청평조(淸平調)3수 - 이태백(李太白)


[ ▲ 무산(巫山) ]

청평조사 1
구름 보면 님의 열 두 폭 치만 양하고
꽃 보면 님의 얼굴인 듯
더 못 견딜 이 그리움...
군옥산에나 가야 만날까.
달밤에 요대를 찾아야 할까.

청평조사 2
이슬 머금은 한 송이 모란꽃을
무산(巫山)의 비구름에 견줄 것인가.
옛날의 누구와 같다고 할까.
한나라 비연이면 혹시 모르리

청평조사 3
어느 것이 사람이고 어느 것이 모란인지
임금의 얼굴에는 웃음이 넘친다.
또 무슨 한이 있을 수 있으랴.
침향정엔 지금 봄이 무르익는다.

雲想衣裳花想容
春風拂檻露華濃
若非群玉山頭見
會向瑤臺月下逢
一枝紅艶露凝香
雲雨巫山枉斷腸
借問漢宮誰得似
可憐飛燕倚新似
名花傾國兩相歡
常得君王帶笑看
解釋春風無限限
沈香亭北倚闌干

이백(李白)
자(字)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 당(唐) 현종(玄宗)때시인.

벼슬은 한림공봉(한림원에서 황제의 시 문학등의 고문)
이 시가는 현종이 양귀비(楊貴妃)와 궁정에서 모란꽃을 감상하면서 이태백 으로 하여금 신악장(新樂章)을 짓게 하였으나
술에 대취 하여 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몸을 가누지 못해 좌우에서 얼굴에 물을 퍼붓고 일으켜 붓을 잡게 했던 바,
즉석에서 위에 청평조(淸平調)3수를 지엇다 함.

이 시가 화근이 되여 궁중에서 쫒겨나고 벼슬도 그만두고 말았다.
즉, 양귀비를 모란에 비유하고 무산에 선녀도 미치지 못한다고 읊은 것 까지 좋았는데, 한무제(漢武帝)의 총애였던 조비연(趙飛燕)에 비교한 것이 양귀비의 노여움을 샀다.(비연은 품행이 바르지 못했다고 함)
원래 벼슬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사람이니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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