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ouk 2019. 4. 13. 12:44

자화상 -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뿐이었다.
어매는 달을두고 풋살구가 꼭하나만 먹고싶다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오라오지 않는다하는 외(外)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눈이 나는 닮었다한다.
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어떤이는 내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가고
어떤이는 내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찰란히 티워오는 어느아침에도
이마우에 엉틴 詩의 이슬에는
멫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꺼있어
볓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숫개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자화상(自畵像)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우물을 홀로 찾어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펄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저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저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펄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