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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연분...

choouk 2019. 4. 14. 14:51

천생연분 - 박노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이뻐서가 아니다. 
젖은 손이 애처로와서가 아니다. 
이쁜걸로야 TV탈렌트 따를 수 없고 
세련미로야 종로거리 여자들 견줄수 없고 
고상하고 귀티나는 지성미로야 여대생년들 쳐다볼 수도 없겠지 
잠자리에서 끝내주는 것은 588 여성동지 발뒤꿈치도 안차고 
서비스로야 식모보단 못하지 
음식솜씨 꽃꽃이야 강사 따르겠나 
그래도 나는 당신이 오지게 좋다. 
살아 볼수록 이 세상에서 당신이 최고이고 
겁나게 겁나게 좋드라. 

내가 동료들과 술망태가 되어 와도 
몇일씩 자정 넘어 동료집을 전전해도 
건강걱정 일격려에 다시 기운이 솟고 
결혼 후 3년 넘게 그 흔한 세일 샤스하나 못사도 
짜장면 외식 한번 못하고 로션하나로 1년 넘게 써도 
항상 새순처럼 웃는 당신이 좋소. 

토요일이면 당신이 무더기로 동료들을 몰고와 
피곤해 지친 나는 주방장이 되어도 
요즘들어 빨래, 연탄갈이,김치까지 
내 몫이 되어도 
나는 당신만 있으면 째지게 좋소. 

조금만 나태하거나 불성실하면 
가차없이 비판하는 진짜 겁나는 당신 
죄절하고 지치면 따스한 포옹으로 
생명력을 일깨 세우는 당신 
나는 쬐그만 당신 몸 어디에서 
그 큰 사랑이 , 끝없는 생명력이 나오는가 
곤히 잠든 당신 가슴을 열어 보다 멍청하게 웃는다. 

못배우고 멍든 공순이와 공돌이로 
슬픔과 절망의 밑바닥을 일어서 만난 
당신과 나는 천생연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과 억압 속에 시들은 
빛나는 대한민국 노동자의 숙명을 
당신과 나는 사랑으로 까부스고 
밤하늘 별처럼 
흐르는 시내처럼 
들의 꽃처럼 
소곤소곤 평화롭게 살아갈 날을 위하여 우린 결말도 못보고

눈감을지 몰라 
저 거친 발굽 아래 
무섭게 소용돌이쳐 오는 탁류 속에 
비명조차 못지르고 휩쓸려갈지도 몰라. 
그래도 우린 기쁨으로 산다 이 길을 
그래도 나는 당신이 눈물나게 좋다 여보야 

도중에 깨진다 해도 
우리 속에 살아나 
죽음의 역사를 넘어서서 
이름 봄마다 당신은 개나리 나는 진달래로 
삼천리 방방곡곡 흐트러지게 피어나 
봄바람에 입맞추며 옛얘기 나누며 
일찌기 일 끝내고 쌍쌍이 산에 와서 
진달래 개나리 꺽어 물고 푸성귀 같은 웃음 터뜨리는 
젊은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며 
그윽한 눈물을 짖자 여보야 
나는 당신이 좋다. 
듬직한 동지며 연인인 당신을 
이 세상에서 젤 사랑한다. 
나는 당신이 
미치게 미치게 좋다.

* 박노해

1957년, 전남 함평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장흥 벌교 등지에서 자랐다. 
15세에 상경해 선린상고(야간)를 졸업하고, 섬유·금속·정비 노동자로 일했으며, 경기도 안양에서 서울 개포동까지 운행하는 98번 버스를 몰기도 했다. 유신 말기인 1978년부터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고, 사회주의 혁명을 목적으로 한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의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91년 3월 10일 안기부에 검거되었다. "반국가단체 수괴" 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으며, 1998년 8월 15일, 정부수립 50주년 경축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1983년 『시와 경제』 제2집에 「시다의 꿈」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1984년 첫시집 『노동의 새벽』 간행. 진지하고 구체적인 노동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한 사실주의의 정신으로 노동해방이라는 현실적인 목표를 지향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