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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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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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만나러
서울구치소로 가는 밤길에 함박눈이 환히 길을 밝힙니다.

눈송이들은 눈길을 달려가는 어른 쥐들의 눈동자인 양 어여쁘고
당신이 기대어 잠들던 벽돌은 길이 되어
추운 나무뿌리들의 가슴을 쓰다듬고 있습니다.

언젠가 당신을 만나고 돌아오던 날
눈길에 십자고상 하나 던져버렸던 일이 부끄럽습니다.

이제 곧 나무를 떠난 나뭇잎들은 돌아옵니다.
적게 가질수록 더 많이 갖게 된 나뭇잎들은 썩어 다시 싹을 틔웁니다.
당신은 상처입을 때까지 사랑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아직도 바람에 흔들리는 까닭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새벽별들이 가끔 나뭇가지에 걸려 빛나는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나무뿌리들의 고요한 기쁨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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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1950 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82 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등이 있으며,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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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이후 시가 씌어졌다.
사람은 누구나 다 시인이다.
사람의 가슴속에는 누구나 다 시가 들어 있다.
그 시를 내가 대신해서 한 권의 시집으로 묶었다.
당신의 가난한 마음에 이 시집의 시들이 맑은 물결이 되어 흘러가기를...

- 1998 년 6월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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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김영동 - 나뭇잎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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