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있는 무덤 (멀리 있는 빛)

김영동(金永東)
1951년 1월 29일 출생
대금연주가, 작곡가
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김영동은 국립국악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했다. 김영동은 국악기를 가지고 서사적인 작품을 발표했다. <가객>, <매굿>, <단군신화>, <토지>와 같은 선이 굵은 작품을 만들었다. 이런 음악은 ‘서사음악극’ 이란 이름으로도 불려진다.

이렇게 서사성이 강한 음악을 만들게 된 것은 일찍이 1970년대 중반부터 연극음악을 많이 만들었던 경력과도 관련있을 것이다. <초분>, <태>, <한네의 승천>, <옛날 옛적 휘어이 휘이>, <물도리동>, <산국> 등 그의 대표적인 연극음악 작품이다.

이른바 국악가요라고 불려지는 노래 만들기에도 <애사당>, <개구리소리>, <누나의 얼굴>, <어디로 갈거나> 등을 만들어서 대중적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동안 국악관현악에서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했던 태평소와 양금과 같은 악기의 새로운 쓰임새를 개척한 작곡가이기도 하다.

*
“풍각쟁이로구먼!”

1973년 어느 날 선술집에서 시인 김지하는 연극 음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던 대금연주자 김영동을 소개받자 대뜸 이렇게 일갈했다.

김영동은 선배인 김지하가 조심스러워 속으로만 대꾸했다고 한다.
“글쟁이로구먼!”

선술집에는 우리 식의 마당극을 염두에 두고 판소리에 빠져 있던 임진택과 탈춤운동에 한창이던 채희완도 앉아 있었다. 글쟁이와 탈놀이패, 광대가 한데 어울린 자리에서 풍각쟁이란 당시 민중문화운동에 뛰어든 ‘먹물’ 예술인들에게는 자부심이자 존칭인 셈이었다.

김영동씨의 노래를 듣고 스승님이 했다는 말...

"여보게! 작곡은 하되, 제발 노래는 부르지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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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는 무덤

멀리 있는 무덤 - 김영태 시인
- 金洙暎 祭日(김수영 제일)에

6월 16일 그대 祭日(제일=제삿날)에
나는 번번이 이유를 달고 가지 못했지
무덤이 있는 언덕으로 가던
좁은 잡초길엔 풀꽃들이 그대로 지천으로 피어 있겠지
금년에도 나는 생시와 같이 그대를 만나러
풀꽃 위에 발자국을 남기지 못할 것 같아
대신에 山 아래 사는
아직도 정결하고 착한 누이에게
詩集(시집) 한 권을 등기로 붙였지
"客草"(객초)라는 몹쓸 책이지
상소리가 더러 나오는 한심한 글들이지
첫 페이지를 열면
그대에게 보낸 저녁 미사곡이 나오지
표지를 보면 그대는 저절로 웃음이 날 꺼야
나같은 똥통이 사람되 간다고
사뭇 반가워할 거야
물에 빠진 사람이 적삼을 입은 채
허우적 허우적거리지
말이 그렇지 적삼이랑 어깨는 잠기고
모가지만 달랑 물 위에 솟아나 있거든
머리칼은 怯먹어 오그라붙고
콧잔등엔 기름칠을 했는데
瞳孔(동공)아래 파리똥만한 點(점)도 찍었거든
국적없는 道化師(도화사)만 그리다가
요즘은 상투머리에 옷고름
댕기, 무명치마, 날 잡아잡수
겹버선 신고 뛴다니까
유치한 丹靑(단청)색깔로
붓의 힘을 뺀 題字(제자)보면
그대의 깊은 눈이 어떤 내색을 할지
나는 무덤에 못가는 멀쩡한 四肢(사지)를 나무래고
침을 밷고 송곳으로 구멍을 낸다우
간밤에는 바람소리를 듣고
이렇게 시든다우
꿈이 없어서
꿈조차 동이 나니까
냉수만 퍼 마시니 촐랑대다 지레 눕지
머리맡에는 그대의 깊고 슬픈 시선이
나를 지켜주고 있더라도 그렇지
싹수가 노랗다고 한 마디만 해주면 어떠우

* 道化師(도화사) : 민속극에서, 재주를 부리거나 익살을 떠는 역할을 맡은 배우.
* 김영태 시인의 글에 김영동씨가 곡을 붙여 직접 노래한 "멀리 있는 빛"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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