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한마리 - 백기완

군사 독재 기간에 당한 고문탓에 몸과 건강이 나빠지자 자신의 기상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쓰여진 詩...

畵 : 광대가

"매 한마리" - 백기완

*
부러진 창끝을 부릅뜨고
죽어간 옛 장수의 여한

한아름 때리며 눈이 내린다

삭쟁이 울음은
이미 서산을 넘고
깡추위와 맞서다
참나무 얼어 터지는 새벽

천고의 신비를 자락마다
눈발은 여기서 저기서
천군 만마처럼 휘몰아치며
모든 날개짓을 거부할 때
모진 바람을 거슬러
치켜 뜬 매 한마리
둥지를 깬다

나아가자
모두를 매질하는
저 채찍을 헤쳐
거대한 무명의 치마폭인양
감겨오는 서러운 역사

한치 앞이 캄캄해도
천리안은 번뜩이고
마파람이 어기찰수록
외로히 어디로 가는가
매 한마리여

굽어보는 계곡을
가로질러
십이 선녀가
옥체를 씻었다는
선녀탕은 꽁꽁 얼어붙고

산을 등지고 물을 끼어
살터라던 화전민 오막살이
마실꾼 기침소리도
모두 잠들었는가
날짐승 들짐승마저
꿈쩍 않는
저∼ 매몰찬 눈보라속을

오,
장엄한 자여
사나운 부리는
굳게 다문채
우주의 양극을
틀어쥔 발톱

어깨짓 한사위로
모진 바람에 멀미진
지구를 데불고
서둘러 가는 곳은
그 어느메드냐

오, 장엄한 자여
세상의 속배들은
너를 다만
고독으로 불리우는
너의 자태

모두가 지쳤는테
침몰하는 하늘을 다스려
평화를 날개짖는
그곳은 도대체
어드메드냐

畵 : 광대가

80년 2월 "매 한마리에 얽힌 이야기"...

**
이 비나리는 감옥 안에서 죽음이 다가옴을 앞두고 내 인간적 기상을 을러댄 대표적인 것의 하나라고 자부해본다.

그때 윗층에 있던 시인 김지하는 운동을 나가다말고 몰래 내 방 철창을 붙잡고 말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절대 안죽는다. 죽어서도 안된다. 이 분단의 수렁, 통일의 과제를 놓고 어찌 죽습니까"하고 격려를 하다가 자기 방으로 쫓겨 올라간 한 밤엔 통증이 왔다.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못견딜 다친 상처가 유독 눈이 내리고 우중충한 날이면 영락없이 드세진다.

꼭 죽을 것만 같았다. 이때 쓴 비나리가 대표적으로 두 편이 있는데 하나는 '달', 즉 뻔대머리라는 비나리로써 내 감상이 가냘프게 드러남으로써 내 인간적 약점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라면 내 혁명적 기상을 을러댄 것이 이 '매 한마리'가 아닌가 한다.

'부러진 창끝을 부릅뜨고 / 죽어간 옛장수의 여한처럼 / 한 아름 때리며 눈이 내린다'라는 첫 대목을 살펴보자.

장수는 싸우다 죽어도 그 뿌러진 창끝은 영원히 죽지 않고 부릅뜨고 있거늘 몰아치는 눈보라 그에 맞서는 눈매는 바로 그 장수의 한, 천추에 맺힌 원한으로 보였던 것이 그때 내 심정이다.

날은 춥다. 그 추위가 영하 삼십도로만 내려가면 그 깡추위와 맞섰던 참나무는 얼어 터지는 법, 그리하여 눈보라는 천군 만마처럼 휘몰아치며 모든 날개짓(비상)을 거부할 때, 그 눈보라치는 방향을 거슬러 준매를 치켜뜬 매 한마리는 바로 그때 자기 둥지를 깨는 것이다.

왜, 모든 비상을 거부하는 저 폭풍은 바로 반역의 맞파람이라, 그것을 다스리지 않고 어찌 장수매가 등지에 쪼구리고 있을손가.

이리하여 매가 하늘에 떠 내려다보면 태백대간(태백산맥은 왜식이다. 대간은 산 줄기란 우리말) 금강산, 십이 선녀가 옥체를 씻었다는 선녀탕은 꽁꽁 얼어붙고 화전민 오막살이도 불이 꺼지고 모든 날짐승 들짐승이 추워 꼼짝 못하는 속을 흘로 고고히 높이 뜬 매 한마리.

그 사나운 부리는 굳게 다문채 억센 발톱으로는 우주의 양극을 틀어 쥐었다. 그리고 어깨짓 한사위로는 모진 바람 제국주의 바람에 정신을 잃고 허우적대는 지구를 데불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아, 그가 지금 가는 곳은 도대체가 어드메드냐. 해방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이것을 모르고 세상의 소시민적 속물아치들은 그러한 매를 다만 외롭다 하지만 그는 지금 높이 떠 침몰하는 하늘, 즉 압제의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의 평화통일의 세계로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매 장산곶의 매도 이렇게 사는네 내가 감옥에서 죽을 수야 없지 않는가 해서 달군 나의 비나리란 말이다. 그러나 이 비나리도 사실은 까맣게 잊었었다. 그런데 한양대 김이영 박사가 내 입원중 어찌 보관했다가 내주었으니 그 고마움 잊지 못한다.

나는 이 비나리를 오늘의 삶에 시달리는 모든 고통받는 사람에게 주고 싶다. 매처럼 장산곶 매처럼 살라고.

그리고 그 매를 그림으로 빚기 위하여 애쓰는 이기연, 최병수 좀 더 분발해 주기 바란다. 내 딸 미담이도 매일 장산곶매를 그리고 있는데 이 비나리는 그러한 젊은이들에게 격려는 안될까.

오, 이땅의 사람들이여 우리 장산곶 매처럼 우리 사십년 분단의 수렁을 박차고 저 매몰찬 반역의 폭풍을 거슬러 제국주의 역사를 다스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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