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정치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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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法頂)스님의 메세지...
주제: "언론과 정치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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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두고 연일 음산한 날씨 때문에 풀을 쑤어 놓고도 미처 창문을 바르지 못 했다. 가을날 새로 창을 바르면 창호에 비쳐드는 맑은 햇살로 방안이 아늑하고 달빛도 한결 푸근하다. 이제 산중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서 날마다 군불을 지펴야 한다.

들녘에 풍년이 들면 산중에는 흉년이 든다는 말이 전해져 온다. 올해는 다행히 비바람이 순조로워 가을 들녘마다 이삭과 열매가 풍성하게 여물었다. 그러나 산중에는 가을 열매들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 山中 열매 흉년든 까닭...

오두막 뒤꼍에 있는 예닐곱 그루의 산자두나무에 열매가 전혀 열리지 않았다. 해마다 주렁주렁 열리던 세 그루의 해묵은 돌배나무에도 올 가을에는 열매가 달리지 않았다. 넝쿨은 전이나 다름없이 무성한데 다래도 전혀 열리지 않았다. 오미자의 빨간 열매도 눈에 띄지 않는다.

산너머에서도 가을 열매가 열리지 않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들녘에 풍년이 들어 거두어들이는 일에 바쁠테니 산에는 눈을 돌리지 말라는 소식인가. 산의 열매가 풍성할 때는 들녘 곡식이 시원찮은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곡식이 모자랄테니 산에 가서 열매라도 거두라는 뜻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올 가을 이곳 산중에는 전에 없이 가을 열매를 보기가 어렵다. 그 원인을 헤아려보니 꽃이 필 무렵 이상저온에다 비가 자주 내리는 바람에 꽃가루의 촉매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한창 꽃이 필 무렵 날씨가 궂어 촉매작용이 안되면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는 이런 사실이 요 며칠 동안 화두처럼 맴돌면서 인간사의 이런 일 저런 일을 생각케 했다.

추석 연휴 덕에 한때나마 바깥세상 소식을 안보고 안들었을테니 우리 속뜰이 그만큼 평온하고 정결해졌을 것 같다. 우리는 이 시끄러운 정보화사회에 살면서 살아가는데 그렇게 요긴하지도 않은 그 많은 정보 때문에 얼마나 무거운 상처를 입고 있는가.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만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 그들의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말과 시시콜콜한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어째서 우리가 낱낱이 말려들고 얽혀들어 우리들의 말짱한 의식에 얼룩이 지게 해야 하는가. 인간생활의 수많은 영역 중에서 그 일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정치인데 어째서 신문 방송 등 언론매체들은 하나같이 정치판만을 과다하게 그리고 무제한으로 다루는지 알 수 없는 일 이다.

돈 안드는 선거라면 그 선출과정도 들뜨지 않고 낭비가 적어야 한다. 전파와 지면에 시간과 돈과 인력을 쏟아가며 시끄러움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의 생활분야에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언론사마다 경쟁적으로 과다하게 보도하는 것은 결코 언론의 사명일 수 없다.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교훈을 되새겼으면 한다.

누구나 걱정하고 있듯이 날이 갈수록 인간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인간 존재 그 자체에 대해서 인간 스스로가 의문을 갖게 하는 일이 지구촌 곳곳에서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치열하고 냉혹한 경쟁사회에서 인간끼리 서로 못미더워 하고 짓밟으면서 중심을 잃은 채 겉돌고 있는 것이 요즘의 세태다.

자신이 진 빚을 갚기 위해 무고한 어린 생명을 목졸라 죽인 비정한 일이 배운 사람의 손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배움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거듭 묻게 한다.

■ 국민 위한 "촉매작용"을...

흔히들 21세기를 거론하지만 미래는 어디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간다. 미래를 믿지 말라고 현자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21세기란 딴 세월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간은 하나의 존재. 그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존재할 뿐이다.

불교의 한 경전(중부경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과거를 따르지 말라. 미래를 바라지 말라. 한번 지나가버린 것은 이미 버려진 것, 그리고 미래는 아직 도달되지 않았다. 다만 오늘 해야 할 일에 부지런히 힘쓰라. 그 누가 내일 죽음이 닥칠지 알 것인가...』

저마다 지금 바로 그 자리에서 한눈 팔지 말고 최선을 기울여 최대한으로 살라는 가르침이다. 우리들이 인간의 가슴을 잃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얼마든지 밝은 세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가슴을 잃게 되면 아무리 많이 차지하고 산다 할지라도 세상은 암흑으로 전락하고 만다.

국민 각자가 자신들이 하는 일에서 마음껏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정치의 몫 이다. 국민생활에 불편과 부당한 간섭과 충격을 주지 않는다면 활발한 촉매작용으로 삶의 결실을 알차게 이룰 것 이다. 여기에 우리의 미래도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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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法頂)

출생 : 1932년 10월 8일
직업 : 승려

강원도 산골, 화전민이 살던 주인 없는 오두막을 빌려 홀로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며, 청빈의 도와 맑고 향기로운 삶을 실현하고 계신 법정(法頂)스님은 30년이 넘는 침묵과 무소유의 철저함으로 이 시대의 가장 순수한 정신으로 손꼽히고 있다.

1954년 당대의 큰 스승이었던 효봉 스님의 제자로 출가하였고 70년대 후반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을 지어 홀로 살았다. 그러나 스님의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지자 수필집 <버리고 떠나기>를 쓴 후 훌쩍 강원도로 들어가 거처를 숨기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저서로는 <무소유> <서있는 사람들> <산방한담> <물소리 바람소리> <텅빈 충만> <버리고 떠나기>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등의 수필집과 류시화 시인이 엮은 <산에는 꽃이 피네>가 있고, 역서로는 <깨달음의 거울(禪家龜鑑)> <숫타니파나> <불타 석가모니> <진리의 말씀(法句經)> 등이 있다.


대금연주곡 -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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