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주저리주저리... choouk 2014. 7. 14. 22:46
* 주중선(酒中仙) 술 속의 신선. 술을 마시며 세상일을 잊고 사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 이태백의 시 "月下獨酌"(월하독작 : 달밤에 혼자 술을 들다)에서 "술에서 얻는 즐거움을 깨어 있는 이에게 전하려 말라..." 했다. 취하며 얻은 즐거움을 깨어 있는 자가 어찌 알꼬... 오늘도 주중선을 꿈꾸며 한잔...
Stories.../주저리주저리... choouk 2013. 6. 9. 21:47
[ ▲ 무산(巫山) ] 청평조사 1 구름 보면 님의 열 두 폭 치만 양하고 꽃 보면 님의 얼굴인 듯 더 못 견딜 이 그리움... 군옥산에나 가야 만날까. 달밤에 요대를 찾아야 할까. 청평조사 2 이슬 머금은 한 송이 모란꽃을 무산(巫山)의 비구름에 견줄 것인가. 옛날의 누구와 같다고 할까. 한나라 비연이면 혹시 모르리 청평조사 3 어느 것이 사람이고 어느 것이 모란인지 임금의 얼굴에는 웃음이 넘친다. 또 무슨 한이 있을 수 있으랴. 침향정엔 지금 봄이 무르익는다. 雲想衣裳花想容 春風拂檻露華濃 若非群玉山頭見 會向瑤臺月下逢 一枝紅艶露凝香 雲雨巫山枉斷腸 借問漢宮誰得似 可憐飛燕倚新似 名花傾國兩相歡 常得君王帶笑看 解釋春風無限限 沈香亭北倚闌干 이백(李白) 자(字)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 당(唐)..
Stories.../주저리주저리... choouk 2011. 9. 17. 00:15
월하독작(月下獨酌) - 이백(李白) 달빛 아래서 홀로 술을 마신다. 이렇게 취해서 얻는 줄거움을 어찌 깨어 있는 이에게 말할 수 있으랴... [ 소리 : 성금연류 가야금 산조 - 중모리 ]
Stories.../주저리주저리... choouk 2008. 4. 6. 21:34
[ 사진 : 중국 "항주" "서호" - 1 ] 월하독작(月下獨酌) 달 아래 홀로 술잔을 들다. 이백 李白 1. 花間一壺酒(화간일호주) 꽃나무 사이에서 한 병의 술을 獨酌無相親(독작무상친) 아무도 없이 홀로 따르네. 擧杯邀明月(거배요명월) 잔 들고 밝은 달을 맞으니 對影成三人(대영성삼인) 그림자와 나와 달이 셋이 되었네. 月旣不解飮(월이불해음) 달은 술 마실 줄을 모르고 影徒隨我身(영도수아신) 그림자는 나를 따르기만 하네. 暫伴月將影(잠반월장영) 잠시나마 달과 그림자 함께 있으니 行樂須及春(행락수급춘) 봄이 가기 전에 즐겨야 하렸다. 我歌月徘徊(아가월배회) 내가 노래하면 달은 거닐고 我舞影零亂(아무영영난)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따라 춤추네. 醒時同交歡(성시동교환) 함께 즐거이 술을 마시고 醉後各分散(취후각..
Stories.../주저리주저리... choouk 2007. 11. 18. 19:59
주중선(酒中仙)을 꿈꾸며... * 가벼움의 발길로 찾아나선 들판... 바람이 세차게 분다. 옷깃을 여미고 한적한 벤치에 앉아 이념이며, 사상 같은 것을 모두 묻어버리고 주중선만을 생각했다... 주중선... 얼마나 행복한 꿈 인가... 그러나 내 눈과 귀에 들리는 세상사가 궁금해 미치것다... * [ 산중여유인대작 (山中與幽人對酌) ] - 이태백 둘이서 마시자니 산에는 꽃이 피고 兩人對酌山花開 (양인대작산화개) 한 잔 한 잔 기울이다 끝 없이 마셨네 一杯一杯復一杯 (일배일배부일배) 취했으니 자고 싶네 그대는 가게나 我醉欲眠卿且去 (아취욕면경차거) 내일 아침 생각나면 거문고 안고 다시 만나세 明朝有意抱琴來 (명조유의포금래) * 주중선(酒中仙) - 술로 세상 일을 잊고 사는 사람. * 또한, 이태백의 시 [月..
Stories.../주저리주저리... choouk 2007. 11. 18. 10:53
도연명과 이태백 *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약 1600여년전의 중국 사람이다. 도연명 혹은 도잠(陶潛)의 자는 원량(元亮이)이고, 동진(東晋)과 송(宋) 때의 심양(尋陽) 시상(柴桑) 사람이다. 그는 전원과 술을 벗 삼아 살아간 중국의 유명한 시인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문화예술의 독보적 역할을 한 것은 불교였다. 동진의 중 마라나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한 것이 384년인데, 이때 도연명은 20세였다. 도연명은 29세 때 벼슬길에 나갔다. 관리생활을 하다가 곧 그만 두었다. 그러나 집안이 어려워 친지의 천거로 나이 40세 경이던 405년에 다시 관직에 나아가 팽택현령(彭澤縣令)을 맡게 되었다. 이때가 동진(東晋) 시대였다. 도연명은 현령이 된지 80여일 만에 스스로 물러났..